2003/8/24/(일) 맑은 후 흐린 후 밤에 비 +12~+18, 환율:1$=30.31루블
기나긴 방학도, 휴가도 끝나고, 좋았던 여름도 끝나고 사과가 익어가는 계절이 오고 있습니다.
모스크바 개구장이 일당.
신입 개구장이들은 8월이 가기전에 올해 마지막 샤실릭을 하자는 빅토리 두목의 제안에 잠시 멍 했습니다. 이제 겨우 8월인데 올해의 마지막.....?
그렇습니다. 그들은 정말로 모르는 것입니다. 모스크바의 가을, 겨울이 어떻게 찾아오는지....
그럼 다음은....
2년에 한번씩만 오는 금쪽들의 비행 이야기, 모스크바 항공우주쇼!
2003년 8월19일부터 24일까지 모스크바 남동쪽 근교도시 쥬콥스끼에서 제 6회 모스크바 항공우주쇼(MAKS)가 열렸습니다. 재작년에 이어 격년제로 열리는 성대한 에어쇼입니다.
이기장, 주중부터 남동쪽을 고개가 빠지도록 쳐다보다가 토요일, 드디어 에어쇼장으로 떠났습니다.
가족들 데리고 가면 기동성도 떨어지거니와 하루종일 맘 편하게 비행기 관찰할 여유도 없음을 잘 알기에 수많은 인파, 줄서기 등등을 핑계로 가족들을 떨궈놓고 홀홀단신 출격했는데... 가 보고 나서 혼자 가길 얼마나 다행인가 방광 저리게 느끼며 가족들이 집안에서 편히 화장실 가고 있을거라는 생각에 매우 행복해 했습니다.
먼저, 가는 고생길.
평소 같으면 30분이면 될 길, 두 시간 걸렸습니다.
도시 초입부터 새치기 차들이 마주 오는 도로 다 막으며 밀고 들어갔어도 굼벵이 걸음을 시간 반 한 끝에야 겨우 주차장에 들어설 수 있었습니다. 주차장은 에어쇼 비행장 현장이 아니라 한 10여킬로 떨어진 뷧꼬바라는 소비행장 풀밭 전체를 주차장으로 급조한 곳입니다. 주차장 입구에서 각 차 트렁크까지 샅샅이 검색하느라 그렇게 막혔던 것입니다.
사람들만 모이는 곳이라면 차량폭탄, 베낭폭탄족이 몰려오는 판이니 어쩔 수 없었겠죠.
이기장, 아직까진 느긋하게 이해하며 쥬콥스끼시 전체 시내버스들이 동원된 듯 한 셔틀버스중 하나에 올랐습니다.
잠깐이면 될 줄 알았는데 꽤 긴 거리를 달려 드디어 쥬콥스끼 비행장에 도착.
다시 짐검사. X-ray대에 모든 물건을 집어넣고 주머니 불룩한 것이 카메라 때문이라는거 주물럭 주물럭 확인까지 받고 드디어 활주로 전시장에 입장.
하늘엔 L-39기로 보이는 6기편대의 러시아 곡예팀이 곡예중이었고 지상에는 일-76을 비롯해 그저 그런 기체들이 주루룩 놓여있었는데 예전에 여러 번 봤던 것들이라 다시 둘러볼 필요는 없을 듯...
오늘은 하늘을 나는 물건들의 비행철학만을 볼테다....
곧바로 활주로에서 가장 가까운 잔디밭으로 갔습니다.
그 중 눈길을 끌었던 회색 덩어리 하나.
어떤 한국기자가 이번 에어쇼에 미제 B-52가 참가하게 되었다며 그놈 러시아 땅에 착륙하는 모습을 자세하게 쓴 적이 있었는데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러샤사람들도 첨보는 미제 폭격기가 흥미로왔던지 가장 많이들 몰려서 있더군요.
B-52를 처음 본 느낌,
하나, 생각보다 기체가 작구나. 747정도는 될 줄 알았더니 납작하고 ... 둘, 기체가 피로한지 날개 앞 동체표피가 주름져 있네. 셋, 엔진이 참 작네...737정도는 될 줄 알았더니 조고마한 것들이 두 개씩 네군데 여덟게 달려 있네....
가는 길에 차 막힌 것도 그렇고 잔디밭이 발 디딜 틈도 없이 붐비는 것도 그렇고 러시아 국민들, 하늘에 눈길 돌릴 여유가 많아졌는지 재작년에 비해 관람인파가 엄청 는 듯 했습니다. 원래 계획은 맨 앞 통제선까지 다가가 맘껏 찍어 보리라 였는데 음~ 꽉 막혀 도저히 꿈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2선에 물러나 프로그램 펼쳐 비행스케쥴 확인한 후 삼각대 세우고 비디오 촬영 시작.
제트기 비행은 참 시원했습니다. 러시아 곡예팀의 L-39 알바트로스 6기편대비행부터 관람시작했는데 사실, 이 기체 민간용으로 판매하기도 하는 중등연습기일 뿐인데도 맨날 프롭비행기만 앵앵거리고 날리며 시원한 수직상승에 목말라하던 터라 쐐쇄쇄액~~ 하며 창공을 가르는 모습이 어찌나 장쾌하던지 팔뚝에 오돌오돌 소름이 돋기까지....
이어 프랑스팀의 알파제트 8기편대곡예.
잘사는 나라 특유의 관록이 있는지라 곡예가 세련됐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유럽, 그중에서도 콧대 센 프랑스니까 미련한 곰들의 땅에서 반드시 뭔가를 보여주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이 알파제트 그 통통하며서도 날렵한 기체에서 잘 드러나 보였습니다. 프랑스 국기를 상징하는 삼색연기를 뿜으며 역시 콰자자악~~~창공을 가르는 알파제트기들, 고속직진성이나 조종성등에서 곡예연습기뿐 아니라 근접전투기로도 제법 쓸만할 듯 싶었습니다.
이때쯤 곤혹스런 인생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물경 30분간의 고뇌 끝에 1차 인생사를 해결하고!(나중에 인생사를 한꺼번에 논하기로....)
다음,
이런 곳 아니면 절대 볼 수 없는 민항기 댄싱!
뚜-204라고 하는 737크기의 중형 카고기가 나왔습니다. 중형기라고 해도 소형 제트기 일색의 에어쇼에 그만하면 웅대한 놈이죠. 크기 대비를 강조하기 위한 듯 먼저 일-103이라는 2인승 경량기가 이륙했고 잠시 후 오두막만한 두 채의 엔진을 우르렁거리며 뚜-204가 활주로를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업무상 공항에 가면 항상 귀담아 듣던 아주 익숙한 소리입니다. 뚜-204중에서도 카고기가 에어쇼에 나온 이유를 나는 알고 있지요. 좌석도 없겠다, 승객 편의시설도 없겠다, 짐 안 실으면 그야말로 출력대 중량비가 종이비행기에 육박하겠죠. 과연, 한 6~700m달린 후 곧바로 솟구치는데 마치 펀플라이기처럼 올라가더군요. 그리곤 날개 좌 우로 흔들며 춤추다 날개 90도로 뱅크 주고 한 1km반경 내에서 선회를 해 내고...(너비 2km, 높이 1km정도의 실내체육관만 짓는다면 실내에서도 날 수 있겠다!) 일반 GA 공항에서 저런놈이 저렇게 나는 날은 조종사 사표 쓰는 날이겠죠?
한가지 인상적인 것은 바로 관람석 앞을 지날때를 빼놓고는 엔진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했다는 것입니다. 그것 참.... 분명 저 앞에는 거대한 그 무엇이 태양을 가리며 지나가고 있는데 머리 숙이고 있으면 뭐가 지나가는지 전혀 알 수 없을 정도로 고오~오~요 했다가 방향을 틀어 가까이 스쳐지날때면 비로소 쿄오오오~~콰루룽~하는 그 정숙성!
그리고 역시 에어쇼의 진수, 6기편대의 미그-29 "스트리쥐(??새)" 곡예팀과....
수-27 "루스끼 비챠지(러시아 용사)" 곡예팀의 현란한 비행!
이들은 이곳에서 이륙하지 않고 인근 공군기지에 떠 올라 아나운서의 멘트와 함께 쏴와아악~~ 나타나 한 20여분간 구름속을 들락날락하며 현란한 기동을 한 후 다시 올때처럼 홀연히 사라져 갔습니다.
이들 6기 편대의 곡예기동도 그렇고, 앞서 경제트기들의 곡예기동을 보면서도 궁금한 것이 3각, 또는 다이아몬드 편대기동을 하면 전체 모습이 마치 한 대의 전투기 모습 그대로라는 것입니다. 즉 리더기가 좌선회를 한다면 왼쪽 기체들은 날개 왼편처럼 아래로 가고 바깥쪽 기체들은 우측날개처럼 위로 들리며 전체가 한 대의 큰 비행기처럼 움직이는 것이죠. 롤을 할 때도 마찬가지고요. 참 희안합니다. 직접 타보면 저절로 그렇게 되는걸까요?
이들, 양대 곡예팀의 비행특성을 비교해 보자면 미그기 쪽은 소형기체라 비행선(線)이 날렵하고 직선적인 반면 수호이쪽은 동체가 커서 상대속도가 더 적어보여 기동에 여유가 있고 우아해 보였습니다. 따라서 미그기들은 편대로 쭉쭉 뻗으며 단체기동을 할 때 제 모습이 살고 수호이기들은 밀집대형도 하늘을 가릴만큼 우람했고 한 대씩 갈라져 단독기동 할 때도 그 정교한 맛이 참 좋았습니다.
이러한 특성은 나중에 앞쪽에 카나드(작은 귀날개)가 붙은 수-35기인가, 암튼 수-27 개량형의 단독묘기비행에서 극명하게 보여졌습니다. 수직상승하다 공중에서 10초이상 얼어붙기(이때 스모크가 기체 전체를 감싸며 기체 모습을 감출 정도가 됩니다- 관중석에서는 아아~ 오오~ 하는 감탄소리, 한숨(?)소리), 바로 그 자세로 엉덩이부터 주저앉으며 똑바로 선채로 내려오다 탱글, 기수 돌려 수직낙하하기. 45도로 상승하다 탱글, 그 자리에서 머리 돌려 하강하기, 머리 45도로 들고 시속 200킬로미터로 기어 가기.....등등... 수호이기의 곡예를 보노라면 양팔을 이리저리 꺾고 비틀어 온갖 기묘한 모습을 다 만들어 낼 수 있는 부드러운 여인의 모습이 느껴집니다. 강력한 살상무기라는 느낌은 전혀 안들고 최고급 제트스포츠기라는 느낌이....
그런 느낌은 저녁무렵 마지막 순서로 등장한 미제 F-15이글 비행을 보며 더욱 확실한 것이 되었습니다.
참관 첫 순간부터 저멀리 활주로 건너편에 이글 비슷한 칙칙한 것이 두갠가, 세갠가가 보여 오호~ 미제가 B-52말고도 또 있었네 했는데 프로그램에 F-15비행이 들어 있어 내심 기대가 매우 컸습니다. 그런데 전체 프로그램의 진행이 계획표보다 30분 가량 늦어 5시 땡 하자마자 에어쇼 종료방송이 나와 틀렸구나 실망할 즈음 왠 서부 카우보이 컨트리음악이 생경하게 울리며 드디어 F-15 이글이 떠오른다는 멘트가 나왔습니다.
어렸을 때 강원도 산골짝에서 쾅쾅거리는 폭발음으로 시골 우리집 방문짝 무수히도 떨어뜨리던 폭군이었지만 재주를 위한 비행은 본 적이 없던지라, 그리고 조국의 영공을 곧 수호하게 된달지라 침 꼴딱꼴딱 삼키며 이글의 비행을 지켜보았습니다(딱 걸렸으!).
이글의 비행은, 아주 날카롭고 빨랐으며 힘이 있더군요. 회전반경은 거의 수호이와 같았으나 급선회 기동은 승강타 업으로 간신히 버티는 듯, 조종사가 많이 짜부라지겠다 싶을 정도로 좀 무리스러워 보였고 배기음은 러시아기체보다 고주파로 째는 소리였으며 주로 쓰는 기동이 초저공 고속진입 후의 1롤 후 수직 상승. 상승력은 대단했습니다. 순식간에 까마득히 점처럼 올라가는 힘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지축을 흔들정도의 굉음을 울리며 치솟는 회색의 뾰족한 기체. 미국 조종사들은 애프터버너 참 줄기차게 켜대더군요. 수호이나 미그기들은 아주 가끔씩 써야만 할때 한번씩만 효율적으로 터트리던데 이글의 꽁무니에서는 밝게 빛나는 오렌지색 두줄기를 내내 볼 수 있었습니다.
결론은....
그려 이런 기체가 조국 영공을 수호한다면 맘을 놓을 수 있을끼여...
그리고....
제가 하루에 두 기체를 다 느껴본바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미제 이글은 남성적이고 저돌적인 반면 러시아 수호이는 여성적이고 부드럽습니다.
양쪽의 전투력 지수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글에서는 불타는 호전성이 느껴졌지만 수호이에서는 살육의 기가 느껴지지 않아 가상의 쌈을 붙일 수가 없었거든요.
한편 미그기는 제법 싸움탉 태가 났지만(이것은 매스컴의 영향인가?) 소형이라 이글만큼의 카리스마는 느껴지지 않았고 다만 떼지어 붙으면 마치 피라냐처럼 날카롭게 물고 뜯을 것 같은 느낌이....
비행철학 설파는 이만 하고....
이제 고단한 인생과 러시아의 미스테리에 대해 논해 볼 차례입니다.
러시아....
인생의 고뇌와 행복이 공존하는 미궁의 땅이라는 깨달음을 또 한 번, 아니 두 번 온몸으로 체험했습니다.
십만인파가 운집한 광대한 들판에 화장실 남자용 18개, 여자용 18개!
인구 2,777명당 화장실 한 칸! 그런데 어떻게 인생사 고뇌가 겨우(?) 한시간의 줄서기로 해결될 수 있지? 왜 다들 화장실을 지어내라며 주최본부 유리창을 깨지 않는거지? 어떻게 인생사 해결을 위한 기나긴 줄에 선 처녀애가 샐샐 웃으며 맥주를 벌컥벌컥 마실 수 있는거지? (그 모습을 보기만 하여도 아랫배가 터져버릴 것 같은 공포감에 식은땀이 삐질삐질, 그래도 다들 허허 웃고 샐샐 웃어서 나도 흐흐 웃어야 했다는...)
어찌어찌 악몽같은 세월이 흘러 드디어 식은땀과 함께 인생사를 해결하고 감미로운 행복감에 가득차 돌아 나오던 순간 퍼뜩 떠오른 그 처참한 간이화장실의 모습에 새삼 경악할 때, 어찌 옆칸 여인네들은 참 못볼 광경이여를 웃으며 말할 수 있었던걸까?
......
해는 구름속으로 지고 하늘을 찢던 제트음도 사위어들자 10만인파가 일시에 출구쪽으로 몰리는데 이 또한 깨달음의 한 장이었으니....
러시아 TV 공익광고의 한 장면, 콘돔속의 씨앗처럼 줄이라곤 생길수도 없는 혼돈의 수라장에서 한시간 넘게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는 와중에 그 누구 하나 에썅~ 하고 불평하는 사람 없더군요. 걸쭉한 농담, 농담...웃음소리.. 그 와중에 피어나는 젊은 연인들의 불타는 키스.... 내 앞 할아버지께서는 옆에 곱게 생긴 할머니께 작전들어가셨다가 뭔가 삐끗했는지 결국 채이시고(흐흐~~인생사란...)...어디선가 애가 눌렸는지 자지러지게 우는 소리 들려오자 다들 우우~와와~ 애기 가진자 앞으로 보내라 함성소리가 들리고... 다시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는 소용돌이 속에 한쪽이 트이자 발검음 안옮겨도 그쪽으로 떠서 움직이는 듯 옮겨져가 저절로 셔틀버스에 태워졌습니다.
후~이젠 끝난것인가...
마지막으로 한가지 기억에 남던 것은....
러시아의 정예, 수호이와 미그기에 대한 러시아인들의 자긍이었습니다.
아나운서의 우라(만세!)선창이 아니었더라도 이들 기체들이 비행할 때 러시아인들의 환호는 거의 광적이었습니다. 리더기 조종사로부터의 축하메시지가 공중에서 중계되었을 땐 애기업은 아줌마서부터 할머니들까지 우라를 외치며 깡충깡충 뛰고...온갖 시름 잊고 아이처럼 기뻐한다는게 저런거구나 싶게... 앞의 한 총각은 감격에 겨워 몸을 부르르 떨기까지....(나랑 같은 스피시스일까?) 이젠 러시아도 많이 펴서 예전처럼 궁상맞은 설움도 없는데다 이런 정예기까지 가지고 있다는 자긍이 부러버...(곧 이글기를 가지는 나라에서 온 외국인)
정말 끝으로 무지무지 아쉬웠던 것은.....(내가 미쳤지, 왜 그랬을까?)
비디오촬영한답시고 좁디좁은 액정카메라만 바라봤단 사실입니다. 시원스런 하늘의 큼지막한 쇳판들을 좀더 자세히 봤어야 비행철학이 견고해 졌을텐데....
에어쇼 전과정을 찍은 MAKS2003비디오가 1주일 후면 시중에 쫙풀릴텐데, 단돈 100루블이면 내가 찍은 흔들리는 엉터리 화면하곤 비교도 안되는 프로비디오가 나올텐데 왜 그리 직접 찍는데 집착했는지....그리고 이렇게 관람기까지 쓸 줄 알았다면 디카사진이나 많이 찍어둘걸....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