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8/25(일) 뿌윰하게 맑음, +12 ~ +22, 환율:1$=31.58루블
그럭저럭 근근하게 일기 서너번 쓰다보니 팔월도 다 지나갔군요^^. 좋은 세월도 다 갔고...
카드 명세서 떼어보니 50MB 공간비용은 찰칵칼칵 칼같이 빠져나가고 있는데...
광란의 밤을 보내고 피죽도 못 얻어 먹고 망치로 얻어 맞은듯이 쑤시는 몸을 추스려 8월이 다가기 전 또 한편의 모스크바 이야기를 올립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모스크바의 바나나섬 남단 이야기입니다(지도에 파란색 사각형 지역).
에~ 이곳으로 말씀드릴것 같으면....
모스크바강 본류와 운하형태의 지류가 시내 한가운데서 갈라져 흐르며 바나나같은, 혹은 꼬추같은, 혹은 부메랑 같은 섬이 형성된 곳입지요.
모스크바가 워낙 평지라 높은곳에서 내려다 볼 수가 없기에 그곳 자체에 들어서면 뭐 섬같은 느낌 전혀 안나긴 합니다만 암튼 섬은 섬입니다.
피같은 돈 들어가는 공간에 왜 이곳 이야기를 실어야만 하는가...
그곳은 이상한 곳입니다. 동화같이 아련하고 몽환적입니다. 달콤한 딸기과자향이 그런 분위기를 더욱 더 진하게 느끼게 해 줍니다. 번잡하고 웅장한 모스크바 시내 한가운데 엄연히 자리잡고 있으면서도 그곳에선 모스크바의 냄새를 맡을 수가 없습니다.....
음~ 글과 말로는 더 이상 설명할 수가 없군요. 아래 사진으로도 온전히 설명할 수는 없을 겁니다. 직접 느낄 수 있을 뿐....
모스크바를 찾은 이들은 대부분 붉은광장과 크레믈린을 기억속에 담고 떠나 가지만 이곳을 찾는 이들은 거의 없을 겁니다. 하긴 빠듯한 여정속에 이곳을 한가로이 거닐 수 있는 여유도 없겠지만요. 하지만 이곳을 한바퀴 거닐 수 있는 시간을 낼 수 있다면 제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아시게 될겁니다.
모스크바의 휴일, 산책의 시작은 선착장에서부터.
뿌연 스모그 안개가 하루종일 도시를 감싸 마치 흐린 안경을 쓴듯 어지러웠던 지난 일요일, 아이들이 보고 싶어하던 '스쿠비-두'영화를 찾아 시내 "우다르니끄"영화관까지 진출을 했습니다. "돌격대원"영화관이라...소비에트식 이름은 참 과격하기도 하여라.
변두리 우리동네 영화관보다도 싼 60루블씩에 오져하며 표를 사고보니 시간이 한시간 남았습니다.
우리 배나 탈까? 왕복에 두시간 걸리므로 안돼겠지? 산책이나 하자꾸나. 우선 사진 한장 박고. 강건너 구세주 성당도 멋있고 마침 유람선도 들어오니 사진발 좋겠구나.....
선착장 앞에 서있는 웅장한 현대식 건물, 에스트라다 극장을 지나면서부터 갑자기 "!" 하나가 쿵 가슴을 때립니다. 출퇴근길, 먼발치로만 바라보던 베르세넵스까야 강변로 초입의 풍경은 그저 나즈막한 적벽돌건물이 소박하게 서있는 정도였는데 처음으로 걸어 지나치며 보니 몇백년은 됐음직한 다 허물어져가는 길가 건물이 심상찮은 기운을 품고 있었습니다.
가운데 아치형 입구가 있었는데 어디로 통하는 입구일까? 옛날로 돌아가는 타임터널의 입구는 아닐까...
그 아치 안마당에는 자그마한 정교회가 있었습니다.
흰두건(?? 뭐라 부르지?..)을 쓴 수녀(?)들이 서너너덧 마당을 오가고 있는 중에 큰딸내미,
"이런 교회는 말이죠, 쁠라똑(머릿수건)안쓴 여자는 출입금지요, 캡쁘까(남자모자) 안벗은 남자도 출입 금지래요. 우리는....."
하면서 아는체를 하는 가운데 쭈뼛쭈뼛 귀여운 성당 본당 가까이 가 보니 18세기에 세워진 '니콜라 성당'이라는 팻말이 벽에 붙어 있었습니다.
"작고 귀여운건 확실한데 어째 알록달록 색칠이 꼭 어린이 놀이터 온 기분이 나네...."
어쩌고 하며 교회 뒷마당을 향해 발걸음을 옮깁니다.
성당 본당을 비껴돌아 후원으로 들어서자 갑자기 귀에 와그르르 쏟아지는 '띵깡땡깡띵깡땡깡~~~~' 풍악소리(?).
정교회 종치는 일은 종소리보다 종지기의 율동이 한장관 함을 익히 알므로 우리는..
"와! 종친다. 춤 보러가자!! -_-;;"
달려갔습니다.
망루형 종탑안에는 4인조 혼성밴드가 각자 맡은바 종들을 열심히 치며 특유의 리듬과 화음을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종탑도 소박한지라 종줄에 매달려 솟구친다거나 발에 끈매고 뒷발질로 작은 종을 친다거나 하는 묘기(?)는 없고 그저 맡은바 악기를 동당동당 두드리며 엄숙히 구도의 시간을 알리고 있을 뿐. 죄송을 무릅쓰고 사진 한 컷.
매미소리처럼 시끄러운(죄송^^) 종소리를 뒤로 하고 후원을 돌아 또 하나의 몇백년 묵은 건물인 문화연구소를 감상하며 다시 강가로 나옵니다.
꼭 종이배처럼 생긴 똑딱선이 강 한가운데 떠가고 있습니다. 자세히 보시면 가운데쯤의 한 아저씨가 우리를 보고 손을 흔들고 계십니다. 우리도 얼떨결에 손을 흔들어 주었습니다. 그러자 배 안의 모든사람들이 일제히 손을 흔듭니다. 우리 모두도 다시 열심히 손을 흔들었습니다-_-;;
강물을 사이에 두고 서로 떨어져 있으니 괜히 정답고 아는체 하고 싶어지는 심리는 무엇인지...
아마 길 가면서 저러면 좀 이상하겠죠. 하긴 우리 세 여인이 워낙 출중한 미모들이라 그닥 이상한 일은 아닐지도....
흠~흠~ 잠시 오락가락했던 정신을 수습하고^^...
강변길을 계속 가기로 합니다. 낚시하던 아저씨 빈바구니도 민망하게 들여다보고 만약 고기 잡히면 고양이 주실거죠? 물어봤다가 아저씨가 드신다는 말에 놀라기도 하고, 모스크바 강 물고기는 과연 먹을 수 있을만큼 깨끗한 것인가에 대해 토론도 해 가며....
그러다가 익히 알고 있는 붉은 벽돌벽 건물을 만나게 됩니다. 이미 여러번 소개해 드린 그곳, 끄라스나야 악챠브리(붉은 10월) 초콜렛 공장입니다. 공장 창문 너머로 달콤한 과자향이 흘러나와 코를 큼큼거리게 됩니다. 공장벽에 붙여진 흰색 부조 조형물은 아마도 공장을 지을때 사고로 숨진 영혼들을 위령하는 추모비인것 같습니다. 뒤쪽으로 아스라이 피터대제의 동상과 '뜨레챠코프 중앙 예술가의 집'미술관이 보입니다.
경비초소 앞에서 팔도 도시락 라면을 맛있게 먹고 있는 고양이 모녀를 쓰다듬어 주며 우리가 도시락의 고향에서 왔단다 설명을 해 준 후 공장 입구에 있는 초콜렛 매점에 들려보기로 했습니다. 공장에서 나오는 끄라스나야 악챠브리 초콜렛을 중간 유통 없이 직접 원가에 판매한다는 곳입니다.
맛보기로 두서너종을 한두개씩 골라보았습니다. 흐미~ 다해서 7루블인가 나오네요. 270원 어치입니다. 매점 아주머니께서 귀찮은 기색 없이 계산해 주셨습니다.
가격표가 kg단위로 표시된 것으로 보아 대량으로 몇kg씩 사러 오는 이들이 꽤 있나봅니다. 휴가철이라 도시가 텅 빈 지금은 우리같은 관광객들만 간혹 들러 한두개씩 사먹어 보지만 여성의 날 같은 초콜렛 특수기때는 꽤나 붐빌 듯 합니다.
이제 섬 남단을 다 돌아 영화보러 갈 시점이군요. 피터대제 동상 진입로까지 가는 길이 막혀 있으므로 끄라스나야 악챠브리 공장 건물 사이를 가로질러 섬 반대편 강변로로 나섭니다.
강변로 이름 하여 '발롯뜨나야 강변로' 늪지대란 뜻인걸로 미루어 예전엔 이곳이 배후습지, 늪지대였던 모양입니다. 아마도 짜르시대때나 소비에뜨 시대때 노동자, 농부들이 피땀흘려 늪지대를 준설해 지금처럼 번듯한 운하를 만들었을것 같습니다.
공장에서 나온 끄라스나야 악챠브리 초콜렛을 러시아 산지사방으로 실어나르는 컨테이너 트럭을 빼곤 일반 차량이 다닐 일이 없는 곳이므로 도로는 한적합니다. 마침 북까프카스지역으로 떠나는 트럭 하나가 초콜렛을 실을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전쟁터의 체첸 어린이들도 이 끄라스나야 악챠브리 사탕 껍질을 벗길때만큼은 행복하겠지....
이제 모스크바 시내에 전기를 공급하는 모스에네르고 발전소 담벽을 지나 영화관으로 돌아옵니다.
우다르니끄 영화관.
컴퓨터 그래픽 강아지가 주인공인 '스쿠비-두' 영화는 제가 보기엔 좀 낮은 수준이었고...(정녕 제 나이가 몇살인지...-_-;;) 우리 관제탑과 아이들은 참 좋아하더군요.
2002/8/17(토) 흐리다 맑다.., +22, 환율:1$=31.55루블
1.꿈을 이루다?
"드디어 꿈을 이루었습니다. 사랑스런 진짜 '세스나172'를 드디어 한대 마련했습니다. 사람들이 제 예쁜 비행기 구경하려고 무수히 몰려 오는군요."
....라면 얼마나 좋겠는가만 그건 아직 꿈이고... 그래도 실물 세스나 머리를 어루만지며 사진을 찍다니...감격,감격! (그런데...그 비닐봉다리좀 어디 치우고 진짜 주인처럼 의젓하게 찍힐 일이지.. 영 어색스럽군요.)
세스나를 마련한 아빠에 질세라 가족들은 키다리 '야크-52'를 마련했군요. 덤으로 꼬리연도 2대 같이 마련해 아빠의 야코를 완전히 눌러 버리는가....
이에 아빠는 다시 고등 제트연습기 L-39를 사서 콜~~을 외칩니다. 한때 조직에서 생활하셨는지 온몸에 황룡무늬가 꿈틀거리는게 한비행 하게 생겼군요.
...........
2. 첫번째 방문
-집어쳐라, 이게 에어쇼냐?-
8월 14일부터 18일까지 집 옆 도모제도보 공항 한켠에서 소위 '에어쇼'라는것이 열렸습니다. 제가 이렇게 쓰는것에서 이미 짐작하셨겠지만 그건 진실로, 진실로 말하노니 에어쇼가 아니었습니다. 고물 비행기 전시회지..... 지나가는 개가 주관을 해도 그것보단 잘 했을 법 한, 실망 엄청나게 준 썰렁한 비행기 전시회.
제가 에어쇼란것을 첨 겪어보았다면 뭐, 비행기 그림자라도 보았으니 대만족이다 했겠지만 매 2년마다 인근 쥬콥스끼라는 항공군사도시에서 열리는 에어쇼에 빠짐없이 참석해 온 터 에어쇼의 진정한 모습을 잘 알기에 이번처럼 김빠지고 엉성한 '그라운드 쇼'엔 분노마져 느꼈습니다. 그럴바에는 차라리 광고나 말고 자기네끼리 조촐하게 자기네 비행기 지상에 끌어다 놓고 자기네끼리 박수치고 사진찍고 끝낼일이지, 무슨 국제 민항기 에어쇼라는 입간판 광고는 왜 세워 저같이 순수한 사람을 현혹하며, 오밤중까지 무슨 엉성한 가수 불러다가 페스티발 한다고 스피커 소리만 왕왕 울려대고....대체 에어쇼에 3류가수가 나와 엉덩이 흔들어 댈 일이 왜 있습니까? (죄송합니다. 제가 아직 여인과 비행기를 자연스럽게 융합시키는 회장님의 경지에 이르지를 못하여....)
'그라운드 쇼'가 끝난지 이틀이나 지났는데도 그때 생각하면 새록새록 분노가 치밀어 올라 글이 흐트러졌습니다.
흠~흠~(손가락을 가다듬고 맘을 가라 앉히고)....
에어쇼 아닌 '그라운드 쇼'의 진상을 묘사해 보겠습니다.
'에어쇼' 둘째날, 8월 15일. 마침 공휴일이라 참석해 자리를 빛내주기 위해(제가 요즘 증세가 좀 심해지는듯) 비싼 입장권 하나 빼어 들고 도모제도보 공항을 찾았습니다.
쥬콥스끼 에어쇼 당시 멀리 도시 입구에서부터 하늘을 찢으며 우르렁거리는 소리와 곡예 전투기 편대 모습이 보여 마음이 급했던 기억을 떠 올리며 주차장에 차 세우고 에어쇼장으로 걸어 들어가는데 시종 하늘은 비행기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고 깨끗했으며 적막하기 까지 했습니다.
이상타~ 를 연발하며 그래도 '막간 쉬는 시간 아이겠나...'했는데 결국 그날 종일 동안 Su-31,1인용 프로펠러 곡예기 딱 두번 뜹디다 -_-. 그래놓고 에어쇼 둘째날 행사 종료됐다고 띵까 띵까 풍악소리와 함께 야간 페스티발 있으니 가지 마시고 계속 춤과 노래를 즐기시라고.. 어쩌고 저쩌고.... 어찌나~ 허탈하던지 허~허~ 웃음이 나왔습니다.
그래도 일지란에 소식이나마 전해 보겠다고 지상에 전시된 50여대 정도의 허름한 기체를 재원표 읽어가며 사진도 찍으며 둘러 보았습니다.
그 중 몇대의 사진을 올립니다.(작은 사진을 클릭. 다 보셨으면 뒤로가기 버튼을 누르세요. 카운터 올리기 위한 술수 결단코 아닙니다. 쓸쓸한 집 지키면서 저 그런거 초연한 지 오랩니다 -_-;;)
3. 사진 모음과 남자의 수다
세계 최대의 헬기, 밀(MIL)-26.
동체길이 33.5m,폭 8.2m, 높이 8.1m, 8장의 메인로터 지름 32m, 자체중량 28.2t, 최대 적재량 20t(성인 250명), 순항속도 255km/h, 항속거리 800~1200km. 흠~ 물건임에 틀림없군요.
어렸을적 누나가 다니던 학교 운동장에 헬기 한대가 내렸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때까지 땅에 닿아있는 비행기란 물건을 본 적이 없던 터라 침을 꼴딱 삼키며 그게 얼마나 컷대? 한 우리 변솟간만 했나? -_-;;(어릴적부터 저는 비행기에 대해서는 해박했었나 봅니다. 제법 현실적인 크기 비교를 다 할 줄 알다니....)묻고 또 물어 음~ 헬기란 우리 변솟간 크기 정도라는 확인을 받고 그럼 그렇지, 자만(?)했었는데 만약 그때 그 헬기가 이넘이었다면 아마 우리 시골 국민학교 건물 전체와 비교하고 충격 받았겠지요.
엇그제 체첸에서 이 헬기가 한대 추락했습니다. 기계고장인지 로켓탄 피격인지는 알 수 없지만 백 수십명 탑승객 가운데 상당수 인명피해가 있었다고.... (아~쒸~ 올여름엔 어찌 이리 비행기 추락 이야기가 많아 가슴을 알알하게 하는고...)
다시 한번 세계 최대 수송기, AN-124-100M "루슬란"
에어쇼장에 가면 언제나 제일 문 앞에 서서 입 딱 벌리고 서 있는 연립주택만 한 넘.
창고매장같은 이넘 속에 들어가 서면 앞,뒤 카고 문을 통해 시원한 바람이 슁~슁~ 불어 옵니다.
우크라이나 Antonov 항공기 설계국에서 제작. 이넘도 물건이란 칭호를 주어야만 하겠죠.
길이 69.1m, 높이 21.08m, 날개폭 73.3m. 4기의 D-18T 터보팬 엔진 장착. 승무원 4명. 최대이륙중량 392t, 화물 탑재량 120~150t(사진에 나온 모든 분들 다 집어 넣어도 배가 찰려면 한참 멀었겠죠), 순항속도 750~800km/h, 항속거리 5,000~13,300km.
미국 록히드 마틴사의 C-5 갤럭시 시리즈와 비교 10~25% 더 많은 화물 탑재능력 보유.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뚱땡이 화물트럭 같기만 한 이넘보다 유려한 곡선미가 살아있는 미제 갤럭시가 더 좋습니다. 같은 이유로 캐러밴이라는 못생긴 세스나 화물기를 뜬금없이 생산해 아름다운 세스나 라인에 먹칠하고 있는 세스나사를 미워하는 중입니다-_-;;)
음~ 이 루슬란도 몇년전 시베리아에서 이륙 직후 아파트 위에 떨어져 아파트 한채가 통째로 붕괴되는 사건이 크게 보도되었던 기억이....(크~ 또다시 사고와 연관이). 그때 보도 사진중 넙데데하게 불탄 꼬리 날개가 5층 아파트 전체에 기괴스럽게 걸려 있던 사진이 떠오릅니다. 음~ 연립주택과 5층 아파트의 충돌이라...
위 '루슬란'의 바퀴들. 독립쇼바가 달린 5열 복조로 배열되어 비포장 활주로에서 탱크 캐터필러같은 역할을 하게 됩니다. 앞바퀴는 어떻게 생겼더라... 아마 기둥이 2개였고 각 기둥마다 바퀴가 2개씩이던가, 4개씩이던가 달려있었던것 같은데...
이 스무남은개의 바퀴들이 지상을 굴러 400t 가까운 연립주택을 공중으로 들어 올리기 위해 3km의 활주로가 필요합니다.
날으는 연립주택 옆에 매미처럼 붙어선 앙증맞은 Beech Craft사의 King Air C90B 쌍발 프롭기.
세스나 310도 그렇고 Piper Seneca도 그렇고 통통하면서도 날렵한 이런 쌍발 비즈기를 보노라면 적당히 살이 오른 균형잡힌 여인이 연상됩니다.(저도 점점 회장님의 공력을 전수 받는듯 한^^)
화려하고 부유한 미국 에어쇼 장에나 서 있으면 어울릴법 한 이 멋진 기체가 이곳 모스크바 '그라운드 쇼'장에서는 영 어색해 보이는군요. 저는 그래도 명색이 민간항공 에어쇼라길래 에어쇼 피크인 주말에는 이 예쁜놈을 비롯해 이곳에 전시된 모든 비행기가 한번씩은 비행을 선보일 줄 알았습니다. 이 순진한 믿음이 여지없이 배반당한 이야기는 '사진 쇼' 가 끝난 아래에 계속 됩니다. 우선 '그라운드 쇼' '사진 쇼' 쇼쇼쇼를 계속...
뚱땡이 비행기, 그래서 푸근한 비행기, 그래서 사역마처럼 아무리 험하게 굴려도 지칠줄 모르는 당나귀 비행기, 왠만한 첨단 제트기도 어디 가서 명함 제대로 못내밀고 밀려 떨어지는 이 험한 세상에 꿋꿋하게 반세기 이상을 버티며 여전히 뒤뚱뒤뚱 평화롭게 패러슈터들을 하늘로 실어 오르는 비행기, 그런가 하면 첨단 스텔스기를 능가하는 레이다 회피능력을 높이 사서 지구상 어딘가에서는 날개에 특수요원을 얹어 이동시키는 수단으로 무수히 보유하고 있다는 무서븐 비행기... 그 이름은 바로....
An-2!
1947년 8.31 첫비행. 날개 폭18.18m, 높이4m, 동체 길이 12.74m, 기체 중량 3,450kg, 최대이륙중량 5.5t, 순항속도 185km/h(음~ 내 차로 좀 밟으면 나란히 스틸 컷도 찍을 수 있겠군^^), 항속거리 900km, 이륙활주거리 150m, 탑승인원 12명 + 승무원 2명.
(복엽기는 선천적 기피증이 있는데 이넘만은 왠지 정이 가는 녀석이야...퉁퉁한 동체 때문에 그럴까? 볼륨있는 몸매?-어느덧 자유연상의 경지에 들어선 듯...)
경 동축 반전 헬기 Ka-26
자료도 없고 별로 끌리지도 않게 생겼고 쩝~ 할말이 없습니다. (사진은 왜 올린거야..) 무선모형 어느 호에선가 동축반전모형헬기를 제작했다는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납니다.
얘네 카모프 사에서 제작한 동축반전헬기 중 유명한 넘 있죠. 쵸르나야 아꿀라(Black Shark). 음~ 동체도 생긴게 상어랑 꼭 같은 것이 위에 유명한 쌍로터가 서로 반대방향으로 어지럽게 돌며 보는 이의 시선을 교란하는 가운데 스톨턴으로 매끄럽게 돌아서며 하강하던 모습이 눈에 삼삼.... 무장도 상당하다던데 뭐~ 자세한건 야후에서 러시아, 블랙샤크, 헬리콥터 등으로 찾으시면 많이 나올겁니다.
더글라스 DC-3 다코타, C-47 의 구소련 라이센스 생산형 Li-2
(또다시 퉁퉁한 원형 동체, 긴 날개 때문에 좋아하는 녀석이죠. 몸매가...볼륨이...팔다리가 늘씬....어쩌구 저쩌구...)
주기장 맨 마지막에 서 있는 이넘 모습을 보는 순간 넙적한 수직꼬리날개와 동글한 이마부분이 난 C-47이야 하길래 야~ 정녕 에어쇼의 머릿수를 채우기 위해 미국에서 노획한 기체까지 동원하는구나 했는데 가까이 가서 설명판을 들여다 보니 음, 구소련이 미국 라이센스로 4863대나 생산해 낸 기체라네요. 2차대전때 독일군의 레닌그라드 봉쇄당시 레닌그라드 시민들에게 생필품 공수의 주역을 담당하기도 했다는 사역마. 아무리 험하게 굴려도 군소리 한번 안하고 묵묵히 시킨 일 해낼 것 같은 튼튼하고 믿음직한 모습.
그날도 맡은 바 일을 묵묵히 해내고 있었습니다. 뭐냐면... 기내 입장하는 관람객들로부터 돈 울궈내기-_-;;. 시커먼 수송기 동체 내에 뭐 볼 일이 있겠냐만 하늘에 비행기가 없으니 꾸역꾸역 땅에 있는 비행기 안에라도 들어가 보려는 안파들로부터 10루블씩 차곡차곡 받아내는 일을 하루 종일 싫다 소리 한마디 안하고 묵묵히 하고 있더군요.
기체 주위를 돌며 손으로 만져보니 승강타, 러더 등등이 걷보기와는 달리 골조에 천으로 씌워져 손가락으로 세게 누르면 푹 찢어질것 같은 것이며(실제로 손가락 구멍 여럿 나 있었습니다) 함석판을 누덕누덕 기운 듯한 곰보딱지 리벳등등을 보며 아~ 이것이 정녕 하늘을 날으는 물건이란 말인고 경악하고 있었습니다. 누가 비행기를 아름답다고 했던가. 진실은 100m 미인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한가지 궁금한 것은....
조종석에까지 들어간 관람객들이 스틱을 흔드는데 따라 이 사역마의 꼬리타면들이 스윽~ 슥~
아주 가볍게 작동을 하던데 대체 어떤 메카니즘일까요? 유압은 아닌것 같고 단순히 Fly By Wire(신개념의 FBY 아님) 즉, 조종삭에 의해 움직이는 것 같던데 어떻게 그 큰 타면이 그렇게 쉽게 움직이며 비행시 공기의 풍압저항을 어떻게 이겨내는지....
언젠간 알 날이 오겠지요.
이 당나귀의 재원은 무게와 속도밖에 안 나와 있네요.
기체중량 7,650kg, 최대이륙중량 11,700kg, 순항속도 240km/h, 항속거리 2,150km, 상승한도 4200m, 활주거리 400m.
Po-2
기체중량 570kg, 최대이륙중량 1,350kg, 최대속도 165km/h, 순항속도 110km/h(음~ 이 정도면 내 차 지붕에 판대기 깔고 달리면서 조종사 아저씨 걸어 내리게 할 수도 있겠군.)
제가 복엽기는 안좋아 한다고 하긴 했지만 빨강색 도장이 매력적이라 맛보기로...
첫번째 방문날은 평일이라 지상에 있겠지만 주말에 다시 오면 이놈이 하늘을 어떻게 나는고 볼 수 있을줄 알았는데...
호버링 중인 로빈슨 R-44헬기
허~ 참~ 하늘에 날아다니는 것이 워낙 없다 보니 이것도 볼거리라고 사람들이 주의를 기울이는군요(개구리 눈엔 움직이는 물체만 눈에 띈다고 그 누가 비웃었는데 사실 사람눈도 마찬가지죠. 정지해 있는 비행기중에 하나 움직이는 것이 있다면 당연히 눈길이 갈 수 밖에).
입구에서부터 쭉 걸어들어오면서 보니까 R-44자리가 팻말만 있길래 참가 펑크냈나 했더니 조종사 아저씨 어디 다녀오는 길이었나봐요. 멀리서부터 가솔린 엔진소리 왱왱 내며 요란하게 날아오더니 멋지게 U턴 하강해서 착지. 검정 선글라스 낀 조종사 청년 굉장히 으쓱거리더니 다시 날아 오를 폼을 잡는데 그 모습은 이러했습니다. 오른손은 스틱에, 왼손은 자동차 사이드 브레이크 잡는 폼으로. 비행기 요크 양손으로 잡는 자세만 보아 오다가 실지로 헬기 조종하는 자세 보니 한손으로 하는게 좀 생경하고 건방져 보이더군요. 구조상 어쩔 수 없지요. 그리고 오토바이처럼 사이드스틱 레버를 비틀었겠지요. 가솔린 엔진이 왱하고 빨라집니다. 클러치가 붙는데 시간이 꽤 걸리는지 높아진 엔진소리 속에 조종사 청년과 우리는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멀뚱히 서로 바라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로터 바람가르는 소리가 드디어 높아지자 조종사 청년 사이드 스틱을 천천히 올렸겠지요. 로터의 비틀림각이 커지는게 보이고 바람저항소리가 홱 높아지더니 기체가 기우뚱거리며 떠오릅니다. 이제 러더페달을 발로 차서 머리를 옆으로 돌리며 사이드 스틱을 더 비틀며 더 올리고 상승해 가는거지요. 그 와중에 오른손으로는 기체가 넘어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균형을 잡아주고....뭐 그렇게 헬기를 조종하는 것이겠지요.
러시아가 자랑하는 1인승 곡예기 Su-31M
서두에 썼듯이 이날 유일하게 딱 2번 비행해 이곳이 '에어쇼'장임을 잊지 않게 해준 고마운 비행기-_-;; 생기기도 간단한 것이 우리 모형기 조금 크게 만들면 저렇게 되지 않겠나 싶을 정도입니다. 뭐 토잉카도 필요없이 그저 밀고가서 활주로에 집어 넣습니다.
이륙중량 800kg, 최고속도 330km/h, 착륙속도 115km/h, 항속거리 1,100km..... 그리고 맨 마지막에 +12/-10 이라고 쓰여 있었는데 이것이 만약 내하중계수라면 좀 과장된것 아닌지....
이날 유일하게 비행한 기체이므로 비행 모습도 간단히 묘사해 보자면...
대형 여객기용 긴 활주로를 달리고 자시고 할것도 없이 훌쩍 떠올라 창창하게 남은 활주로를 저공으로 끝까지 날아간 뒤 수직으로 쭉 상승하며 롤 몇번 하고는 강력한 파워를 이용해 선회 두어번만에 구름고도까지 올라갔습니다. 그리곤 수직으로 내리 꽂으며 곡예기동을 시작했는데 뭐 우리가 엑스트라 모형기로 하는 곡예기동을 좀 큰 비행기로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그에 따라 저도 모르게 손가락을 움찔,움찔. 우리는 루프를 승강타 한번 당김으로써 호로록 말아버리는데 실기에서는 승강타, 드로틀을 좀 복잡하게 써서 아주 아주 커다란 원을 그려주더군요. 한가지 제가 도저히 모형으로 구현 못할 연기는 Inverted rolling circle이었습니다. 즉 배면비행으로 수평선회를 하면서 쉴새없이 롤링을 해대는 연기였는데 고도 침하 없이 잘 해내더군요. 저러다가 조종사가 방향감각 잃어 버리는 날이면......
이날 이 유일한 비행을 보면서 처음 안 사실이 있습니다.
왜 이륙 직후에 기를 쓰고 고도를 높이는 것일까? 어떤 곡예기동도 없이 밋밋한 단순선회 하면서 최대의 상승각으로 까마득히 올라가는데 몇분간을 써버리는 것일까?
해답은 비행 전과정이 거의 끝나갈때 얻어졌습니다. 처음에 까마득히 올라가 내리꽂으면서 얻은 운동에너지를 비행 전과정 내내 조금씩 조금씩 나누어 쓰고 있었던 것입니다. 즉 그네타기처럼 한번 낙하하면서 얻은 운동에너지를 다음번 상승할때 위치에너지로 바꿔 축적하고 다시 하강하면서 속도에너지로 바꿔 쓰고 하는 식으로 10여분 내내 최초의 고도 에너지를 이용하는게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공기 저항등으로 에너지를 차츰 소모하여 10여분 쯤 후에는 다시 필사적인 상승을 해야만 하겠지요.
모형기를 날릴때는 잘 알 수 없었던 그 에너지의 축적과 변환이라는 흐름이 실기에서는 정확하게 구현된다는 사실을 안 것 하나로 이날 헛걸음 하지 않았다는 위로를. 고마워, Su-31M.
서두에 제가 잠시 행임~으로 모셨던, 조직에 몸담으셨던 황룡 고등제트연습기 L-39.
없이 사는 나라에서는 매일같이 쓸고 닦으며 준 전투기로도 쓰는 모양이지만 영국같은 나라에서는 군에서 퇴역한 이놈들을 일반인들에게 수십만달러에 판매하기도 한답니다. 돈 있으면 한 대 사서 하늘을 째고 다닐 수 있습니다.
올 여름, 바로 얼마전 우크라이나 리보프에서 에어쇼 도중 수호이-27 제트 전투기가 추락하면서 관람객을 덥쳐 수많은 사상자가 난 뒤끝이라 이 황룡 깎두기님을 비행 시키네 마네 말이 많더니 결국 행님께서는 비행 불가 판정 받으시고 내내 땅바닥에 웅크리고 계시다 마지막날 쓸쓸히 에어쇼장을 떠나 조직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서운합니다. 행임~
키다리YAK-18T
러시아의 대표적인 4인승 민간경비행기. 튼튼하게 생겼지요. 얼마전 제비우스 게시판에 절대 고장 안나는 자세지시계 계기를 단 비행기라고 소개했던 바로 그 비행기입니다. 비행기 천정에 방울추 달린 끈 하나 매달고 그것이 왼쪽으로 기울면 좌선회요, 오른쪽으로 기울면 우선회, 천정에 붙으면 배면비행중이라는 표시랍니다. 간단하고 절대 고장 안나는 계기. 단점이라면 좀 제멋대로 흔들린다는 버그가 있다는 점.
다목적 농업용 경비행기 Su-38L
전세계의 농업용 트랙터가 다 고만고만한 모양이듯이 농업용 비행기라는 것도 그런 모양이네요. 이 못생긴 오리(ugly duck)를 보는 순간 쿄쇼사에서 나온 스케일 모형기 세스나188 AGWAGON이 떠올랐습니다. 기수가 좀 더 길쭉할 뿐 정말 닮았지요? 못생기기도 하였어라!
최대이륙중량 1,300kg, 비행속도 130~150km/h, 농약탱크 용량 500리터.
꼬끼오~~ 집단농장 콜호즈의 아침이 밝아옵니다.
"어~ 부인동무, 농약좀 치고 오겠소"
"남편동무, 다녀오시라요."
남편동무, 머플러를 매고 검은 선글래스를 끼고 가죽부츠를 신고 500리터 농약탱크가 달린 노란색 Ugly Duck에 올라 부릉부릉 시동을 겁니다.
끝없이 펼쳐진 강냉이 밭 바로 위를 스치듯 날며 흰색 물보라를 뿜어내고 솟구쳤다가 다음 고랑을 향해 급선회 하강하는 Ugly Duck의 노랑날개에 아침 햇살이 반짝입니다.
.....
하~ 농사도 이 동무들처럼 지으면 참 멋있겠군요.
4. 두번째 방문
- 부르터스, 너마져...-
대략 이런 비행기들이 땅에 엎드려 있는 '에어쇼'장에 토요일, 가족들과 다시 갔습니다. 이날은 프로그램상에 하루종일 시범비행이 있다고 했으니 말 그대로 민간 항공기들이 쉴새 없이 뜨고 내릴거야... 제트전투기의 예리한 비행은 현실감 없는 환상에 가깝지만 민항기들의 비행은 모형비행과 흡사해 배울 점이 오히려 많을거야....그래, 오늘은 실컷 보고 배우는거야....
뭐~ 결국 철저한 배신을 당했습니다. 전시된 비행기 아무도 안떴습니다. 비즈제트나 C-47, 대형 여객기 등등이 나는 모습 고대했는데 고것들은 내내 꼼짝도 안했고 뭐 소방헬기 양동이 같은거 매달아 물뿌리는거, IL-76소방기가 활주로를 따라 저공 고속으로 날며 물폭탄세례 퍼붓는거 한번 보여 주곤 끝.
(하지만 장관은 장관이데요. 엠체에스라 부르는 러시아 비상사태부 소속 IL-76기에서 쏟아붓는 엄청난 물줄기)
(IL-76이 활주로를 따라 저공접근중입니다. 얼마나 급했던지 벌써 똥꼬문이 열렸군요. 기수부에선 식은땀이 삐질삐질 나는듯-_-)
(드디어 시원하게 쫘아아악~~~)
* 제가 찍은 사진중에 최고로 멋진 장면입니다. (예전에 문방구에서 한장에 150원인가에 수태 사모으던 비행기 사진들과 거의 같은 수준인데 스캔 해 보니 원본보다 선명도가 많이 떨어지는군요)
........
하늘엔 흰구름 망연히 흘러가고 기나긴 고요가 드넓은 풀밭에 드리우는데 간간히 바람결에 들려오는 3류가수의 풍악소리....흰구름 처다보며 써멀이 좋겠다 생각하다가... 써멀 타고 노는 솔개 따라 쌍안경을 조준하다가... 연날리며 노는 아이들 모습 바라보다가....지금 내가 에어쇼에 온건가 들판에 소풍 나온건가 의아해 하다가....
암튼 풀밭 위에 누워 조용하고 평화로운 여름 날 오후를 보내고 해가 뉘엿할 무렵 깍두기 행임 일파가 하나씩 활주로로 자리를 옮기는 것이 보였습니다.
흠~ 그래도 유일한 제트기 곡예는 보여줄 모양인가? 하긴 소형 제트연습기인데 뭐 위험한 일 있다고 비행을 금지시키겠어....
오랜 준비가 끝났는지 드디어 깎두기 행임중 한분이 우릉 거리며 활주로를 박차고 이륙했습니다. 역쉬 제트기는 멋져, 어서 빨리 다들 떠올라 편대 짜고 멋진 모습을 보여주렴. 이 답답한 가슴을 뚫어주렴....그랬는데...
아~ 그들은 갔습니다. 이륙 후 활주로를 따라 비행하면서 날개를 좌우로 흔들었는데 그건 안녕이란 말이었습니다. 또한 제트기 비행 금지를 요구한 도모제도보 공항 주변 주민들과 거기에 넘어가 비행금지령을 내린 주최측에 대한 감자먹임이었습니다. 듣자니 이번 행사 초대를 받고 이탈리아에서 날아온 4기 편대의 곡예팀이라는데 결국 비행 무산되고 고국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마지막 한대는 살살 날아 사라지라는 주최측의 엄명을 비웃기라도 하는듯 이륙직후 거의 수직으로 솟구치며 날개 좌우로 흔들어 안녕과 감자먹임 기동을 실시하곤 숲너머로 유유히 사라져 갔습니다.
그렇게 그들을 보내고 어둠은 내리고 3류 가수의 공연은 쿵작쿵작 시작되고 우리도 갔습니다. 가는 길에 소시지 핫도그를 사먹었는데 큰딸은 다음날 새벽부터 구토와 발열 식중독으로 죽다 살았습니다.
으~ 다신 오지마! 국제민항에어쇼 2002!
2002/8/4(일) 흐린 후 맑음, +25, 환율:1$=31.55루블
영원히 한세상 구가할 것만 같던 무더위가 하루 이틀만에 흔적도 없이 물러가고 모스크바는 다시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구름 끼고(아니, 얼마전 구름 공부한 사람의 도리로 이렇게 두리뭉수리 말하면 안되지...다시..)...난층운이 600미터 상공에 두텁게 깔리고 서늘한 바람이라도 한줄기 불면 반팔차림의 팔뚝에 소름이 오도독 돋는 쌀쌀한 주말이었습니다.
날씨가 서늘해지면서 맥주맛도 없어지고 지난 주 무휴로 일했기 때문인지 온몸에 진이 빠져 토, 일요일 비행장에 가고 싶은 마음도 생기질 않았습니다.
종일 집에서 뒹굴며 글라이더 제작이나 할까 했는데 두 딸들 올타꾸나 하며 휴일계획을 오지게도 세웁니다.
결국 델피나리아(돌고래 수족관)로 가기로.
토요일 느지막히 마지막 공연시간에 맞춰 집을 나섰는데 아뿔사, 여름 관광철에 아이들 방학철 성수기라는 것을 깜빡했습니다.
당일 표는 매진인데 서너배씩 바가지를 씌우는 암표장사만 횡행해 다음날 일요일 표 예매하고 발길을 돌렸습니다.
다음날, 일요일. 어제보다는 개운해진 몸에 비행에 대한 욕심이 슬금슬금 살아났지만 눈딱감고 돌고래를 만나러 갔습니다.
"차두리킥 직전의 델핀들"
1시간정도 계속된 스펙타클동안 총 3종, 네마리의 델핀과 크고 작은 두마리의 물개가 이 여름 성수기를 맞아 돈벌기에 구슬땀을(?) 흘렸습니다. 미국 시애틀인가 하는곳에 있다는 멋진 대형 옥외풀도 아닌 실내 수영장만한 허름한 풀에서 연신 정어리토막으로 허기를 달래가며 위의 차두리킥을 비롯해 물에 빠진 조련사 던져올리기, 링 통과하기, 슬램덩크슛 등등을 자유자재로 해내며 이 열악한 내륙 모스크바의 어느 허름한 수영장에 살고 있는 돌고래들도 풍족한 미국 윌리네 가족 못지않게 재능있음을 과시했습니다.
정어리 기름이 동동 떠다니는 비릿한 물내음 속에 드디어 스펙타클이 끝나고 우리의 돌고래군은 땀 식힐 새도 없이 곧바로 초절정 돈벌기 사업에 들어갔습니다.
바로 아래 사진입니다.
딸들: "돌고래 때 밀려, 검은 때!"
엄마: "그거 피부 너무 이상해!(이그쟈틱해! 새로운 느낌이야!)"
아빠: "음~흠흠~~ -_-;; (지난번 왔을땐 완전 타이어 같았는데 짜식, 오늘은 어째 좀 부드러워진것 같네~)"
그 와중에 큰딸, 오늘은 돌고래 만질때 한번 탱탱 쳐보자고 한 약속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었습니다. 주먹으로 돌고래 후두부를 탱탱 내리쳐 봤는데 공기 든 튜브같은 소리는 안나고 퍽퍽 하는 무지근한 소리가 났다나...
.......
공연이 끝날때부터 사회를 맡았던 돌고래 아저씨, 연신 사진,사진...,자기 카메라 얼마, 본인 카메라 얼마.... 하며 목놓아 안내말씀을 했었는데 역시 오늘의 하일라이트는 차두리킥도, 슬램덩크슛도 아닌 돌고래와 사진찍기였습니다. 관객의 절반 이상이 이 멋진 짐승과 사진을 찍기 위해 풀 양쪽으로 50미터씩 줄을 섰는데 어림잡아 한 200명정도. 한쪽은 못생긴 흰 돌고래가 물속에서 쑥 올라와 내민손에 키스하는 장면을 찍는 옵션이요, 다른쪽은 아까 차두리킥 찬, 날씬한 마린보이 돌고래가 아예 철버덕 풀밖으로 나와 엎드리면 그놈 짚고 찍는 옵션입니다. 큰사진 요금은 동히 8 달러!
지난번 자기 빼놓고 언니만 돌고래 사진 찍었다고 몇년씩이나 마음에 한이 맺혔던 작은 딸내미의 한을 풀어주느라 우리도 돌고래를 만나기 위해 줄을 섰습니다.
차례 기다리며 보니까 저쪽 흰 돌고래는 자아가 굉장히 강한 듯 사육사 아저씨가 아무리 호각을 불어도 말 안듣고 피근피근하다 가끔 생색내듯 한번씩 물밖으로 올라가 사진 찍혀 주는데 이쪽 마린보이 돌고래는.... 흠... 그야말로 젤로븨예 류지(비지네스 맨)였습니다.
자기네만 들리는 호각 소리 나자마자 철버덕 물 밖 장판위로 올라가 피촬영객이 등에 손을 얹으면 꼬리까지 뿌드드드 올려 포즈 잡아 주고 찰칵 후레쉬 터지면 정어리 한토막 얻어먹고, 꼬리 내리고 쉬다가 다시 포즈, 그렇게 한 세번쯤 하면 조련사 아저씨가 물속에 들어가 물 묻히고 좀 쉬고 오라고 호각을 쉬익-! 다시 물속으로 풍덩. 그사이에 지시에 따라 가끔 촬영객들 서두르라는 의미에서 학교종도 땡땡 치고 다시 장판위로 철퍼덕....
하루 4회 공연에 한번 공연마다 50번 이상씩 물밖에 튀어 올라가 꼬리 올리고 입벌리고 사진찍혀주기....
여간 고된 작업이 아닐겁니다. 아마 뱃바닥쪽 가죽에 기스도 많이 났을지도...
우리 큰딸내미같이 귀여운 손으로 퉁퉁 두드려보는건 뭐.... 괜찮겠지만^^ 향수 어지럽도록 짙게 바른 여인이 아예 인형처럼 베고 엎드려 사진찍는걸 볼 땐 '참~ 너도 너른 바다 떠나 이 내륙에서 힘들게 사는구나..' 측은했습니다. 미국에서는 수천만달러 들여가며 프리 윌리도 하는데... (프리! 윌리, 프리! 차두리!)
공연표에 보니 평일은 하루 5회 공연, 주말은 4회더군요. 쉴틈이 없습니다. 대역을 쓸 수 있는것도 아니고. 그런데 밥(정어리)는 먹어야 하고 차두리킥, 슬램덩크슛을 할때만 정어리를 주니 매일같이 하는게 일상이 됩니다. 물속 공연이야 자기 스포츠의 세계이니 건강에도 좋고 정어리도 얻어먹고 좋겠지만 호각소리에 물밖으로 이끌려 나와 이손, 저손에 쓰다듬여 진다는 것, 향수냄새 짙게 마시고... (가끔 우리 딸내미처럼 작고도 고운 손에 두드려 진다는건 괜찮겠지만^^)...그런게 분명 차두리 입장에서는 고역일겁니다......
오늘도 델피나리아 밖에서는 허름한 건물 외양에 상관없이 차두리를 보러 오는 사람들에게 암표가 비싸게 팔릴거고 차두리와 사진 한번 찍기 위해 서슴없이 250루블을 내미는 사람들로 분주했을 겁니다.
휴가철, 다만 스쳐 지나가는 관광객들을 위해 공연을 계속하는 듯, 내용도 부실하고 어설프기만 한 모스크바 구 서커스(츠베뜨노이 불바르)의 한 장면. 더위가 싹 가실 정도로 썰렁합니다. 피서용으로 제격. 금요일, 엄마가 교수님 만나러 간 사이 아이들과 함께 관람했습니다.